본문 바로가기
골목4 : 음악

한희정 - 날마다 타인 듣기/리뷰

by KUWRITER 2013. 8. 20.

좋아하는 여자 보컬이 몇 명 있다. 포티쉐이드의 베쓰, 오지은, 사비나 앤 드론즈, 그리고 한희정. 이들의 곡을 하나씩 골라 얘기해보려고 한다. 한희정의 무슨 노래를 고를까 찾다가, 생소한 제목을 찾았다. 노래 제목이 날마다 타인이란다. 

한희정은 푸른 새벽 시절부터 좋아했지만 솔로로 활동한 음악은 잘 들어보지 않았기에 몰랐다. 벌써 한희정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앨범이 두번째다. 앨범 제목은 날마다 타인. 타이틀은 '흙'이다. 먼저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날마다 타인'을 들어보자. 오프더레코드 영상이다.




한희정 날마다 타인



섬세하지 않다, 는게 첫 인상이다. 푸른 새벽 시절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낯설 수밖에 없다. 이런 강렬한 색깔은 오지은을 떠올리게 한다.

라이브가 인상적이지는 않다. 사운드는 풍부하지만(반복해서 들으면 특히 키보드가 인상적이다) , 한희정의 보컬이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몸짓과 음색에서 어떤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는지는 알겠는데 좀 부족한 느낌이다. 음원으로 들으면 또 다를지도.


한희정 날마다 타인



앨범 커버가 인상적이다. 솔직히 말하면 인상적이기 보다 소름 돋는 쪽이다. 날마다 타인이라는 말을 참 잘 표현했다. 무심하게 가면을 바라보는 인물의 얼굴도 인상적이지만, 더 눈이 가는 것은 가면들이다. 가면들은 전혀 입체적이지 않다. 종잇장 같다. 우리가 쓰고 있는게 그렇게나 얇다.

이쯤에서 날마다 타인의 가사를 보자.



네가 보낼 하루가 궁금하여 이런 저런 추측을 해본다

네가 궁금해 않는 내 하루가 푸석거린다 몹시 바스락거린다


너는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여기 저기 흩뿌려져 있다

나는 매일 거대한 바위들을 온 몸으로 조금씩 힘겹게 밀어낸다


낯설게 느껴진다


잊혀지는 게 그토록 쉬운 일인데

쓸쓸한 마음에 나를 한번 돌아보고

이제 나의 차례인가 서글퍼져도

나는 오래 오래 기억하고 싶어라



한희정은 예전부터 간결한 가사를 써왔다. 몇 문장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날마다 타인의 가사는 꽤 긴 편이지만, 역시 간결하다. 인상적인 부분은 너를 거대한 바위로 비유한 부분. 네가 거대한 바위처럼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고, 나는 매일 그 바위들을 온 몸으로 조금씩 힘겹게 밀어낸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처럼, 사물 여기저기에 투영된 너의 모습을 힘겹게 밀어내는 나.

한희정의 매력 중 하나는 가사를 노래할 때 독특한 발음으로 표현해낸다는 것이다. 물론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지만, 매력으로 보면 또 매력인 요소다. 사비나 앤 드론즈도 그렇고.

 


한희정 날마다 타인



이쯤에서 타이틀 곡인 '흙'을 한 번 들어보자. 파스텔 뮤직에서 나온 뮤비가 있다. 처음 이 뮤비를 보고 노래를 듣는 사람은 무엇을 상상해도 그것과 다른 걸 겪게될 듯..



한희정 날마다 타인



산뜻하다. 산뜻해서 좋은데, 음... ㅋㅋㅋㅋ 처음엔 전위적인가 싶더니 중반부부터는 탄탄하게 나아가는 노래다. 파스텔뮤직 답다고 해야하나, 가볍고 산뜻하다. 다음은 '흙'의 가사.


흙 흙 흙


그 곳엔 분명 아무것도 없어 보였는데

밤새 물 한 모금 마시게 한 것 밖에는 없었는데


어? 흙! 뿅! 라라


무서워 두려워

작고 파란 게 돋아났어

그 어두운 곳에서

난 그걸 쉽게 뽑아버리고는

또 물 한 모금 마시게 했지


따라 뚜 바람 오고 가고

따라 뚜 해는 따뜻하다

따라 뚜 작고 파란 것들

따라 뚜 자꾸 돋아났다



노래와 멜로디는 산뜻하지만 내용은 마냥 그렇지 않다. 귀여운 의성어들이 담겨있지만 진짜 말하고 싶은 부분은 무서워 두려워/작고 파란 게 돋아났어/그 어두운 곳에서/난 그걸 쉽게 뽑아버리고는/또 물 한 모금 마시게 했지 부분. 아무 것도 없던 어두운 곳에서, 뭔가 작고 파란 게 돋아난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밤새 물 한 모금 마시게 한 것 밖에는 없는데. 난 그걸 쉽게 뽑지만, 나는 다시 물 한 모금을 마시게 하고 작고 파란 것들은 자꾸 돋아난다.

여기서 풀은 받아들이기 나름일 것이다. 나의 생각을 먹고 쉽게 자라는 절망일 수도 있고, 헤어진 당신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날마다 타인보다 흙 쪽이 더 좋다. 멜로디와 가사로 동시에 두 가지 느낌을 전하니까.



한희정 날마다 타인



한희정 - 날마다 타인 듣기/리뷰는 여기까지 적어보려고 한다. 예전엔 잠들기 전 푸른 새벽 앨범을 참 많이도 들었더랬다. 그럴 때면 오디오 위에 쌓인 먼지처럼 가벼운 존재가 되어 부유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잠 속으로. 다음에는 누구에 대해 적어볼까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