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여자 보컬이 몇 명 있다. 포티쉐이드의 베쓰, 오지은, 사비나 앤 드론즈, 그리고 한희정. 이들의 곡을 하나씩 골라 얘기해보려고 한다. 한희정의 무슨 노래를 고를까 찾다가, 생소한 제목을 찾았다. 노래 제목이 날마다 타인이란다.
한희정은 푸른 새벽 시절부터 좋아했지만 솔로로 활동한 음악은 잘 들어보지 않았기에 몰랐다. 벌써 한희정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앨범이 두번째다. 앨범 제목은 날마다 타인. 타이틀은 '흙'이다. 먼저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날마다 타인'을 들어보자. 오프더레코드 영상이다.
섬세하지 않다, 는게 첫 인상이다. 푸른 새벽 시절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낯설 수밖에 없다. 이런 강렬한 색깔은 오지은을 떠올리게 한다.
라이브가 인상적이지는 않다. 사운드는 풍부하지만(반복해서 들으면 특히 키보드가 인상적이다) , 한희정의 보컬이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몸짓과 음색에서 어떤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는지는 알겠는데 좀 부족한 느낌이다. 음원으로 들으면 또 다를지도.
앨범 커버가 인상적이다. 솔직히 말하면 인상적이기 보다 소름 돋는 쪽이다. 날마다 타인이라는 말을 참 잘 표현했다. 무심하게 가면을 바라보는 인물의 얼굴도 인상적이지만, 더 눈이 가는 것은 가면들이다. 가면들은 전혀 입체적이지 않다. 종잇장 같다. 우리가 쓰고 있는게 그렇게나 얇다.
이쯤에서 날마다 타인의 가사를 보자.
네가 보낼 하루가 궁금하여 이런 저런 추측을 해본다
네가 궁금해 않는 내 하루가 푸석거린다 몹시 바스락거린다
너는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여기 저기 흩뿌려져 있다
나는 매일 거대한 바위들을 온 몸으로 조금씩 힘겹게 밀어낸다
낯설게 느껴진다
잊혀지는 게 그토록 쉬운 일인데
쓸쓸한 마음에 나를 한번 돌아보고
이제 나의 차례인가 서글퍼져도
나는 오래 오래 기억하고 싶어라
한희정은 예전부터 간결한 가사를 써왔다. 몇 문장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날마다 타인의 가사는 꽤 긴 편이지만, 역시 간결하다. 인상적인 부분은 너를 거대한 바위로 비유한 부분. 네가 거대한 바위처럼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고, 나는 매일 그 바위들을 온 몸으로 조금씩 힘겹게 밀어낸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처럼, 사물 여기저기에 투영된 너의 모습을 힘겹게 밀어내는 나.
한희정의 매력 중 하나는 가사를 노래할 때 독특한 발음으로 표현해낸다는 것이다. 물론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지만, 매력으로 보면 또 매력인 요소다. 사비나 앤 드론즈도 그렇고.
이쯤에서 타이틀 곡인 '흙'을 한 번 들어보자. 파스텔 뮤직에서 나온 뮤비가 있다. 처음 이 뮤비를 보고 노래를 듣는 사람은 무엇을 상상해도 그것과 다른 걸 겪게될 듯..
산뜻하다. 산뜻해서 좋은데, 음... ㅋㅋㅋㅋ 처음엔 전위적인가 싶더니 중반부부터는 탄탄하게 나아가는 노래다. 파스텔뮤직 답다고 해야하나, 가볍고 산뜻하다. 다음은 '흙'의 가사.
흙 흙 흙
그 곳엔 분명 아무것도 없어 보였는데
밤새 물 한 모금 마시게 한 것 밖에는 없었는데
어? 흙! 뿅! 라라
무서워 두려워
작고 파란 게 돋아났어
그 어두운 곳에서
난 그걸 쉽게 뽑아버리고는
또 물 한 모금 마시게 했지
따라 뚜 바람 오고 가고
따라 뚜 해는 따뜻하다
따라 뚜 작고 파란 것들
따라 뚜 자꾸 돋아났다
노래와 멜로디는 산뜻하지만 내용은 마냥 그렇지 않다. 귀여운 의성어들이 담겨있지만 진짜 말하고 싶은 부분은 무서워 두려워/작고 파란 게 돋아났어/그 어두운 곳에서/난 그걸 쉽게 뽑아버리고는/또 물 한 모금 마시게 했지 부분. 아무 것도 없던 어두운 곳에서, 뭔가 작고 파란 게 돋아난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밤새 물 한 모금 마시게 한 것 밖에는 없는데. 난 그걸 쉽게 뽑지만, 나는 다시 물 한 모금을 마시게 하고 작고 파란 것들은 자꾸 돋아난다.
여기서 풀은 받아들이기 나름일 것이다. 나의 생각을 먹고 쉽게 자라는 절망일 수도 있고, 헤어진 당신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날마다 타인보다 흙 쪽이 더 좋다. 멜로디와 가사로 동시에 두 가지 느낌을 전하니까.
한희정 - 날마다 타인 듣기/리뷰는 여기까지 적어보려고 한다. 예전엔 잠들기 전 푸른 새벽 앨범을 참 많이도 들었더랬다. 그럴 때면 오디오 위에 쌓인 먼지처럼 가벼운 존재가 되어 부유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잠 속으로. 다음에는 누구에 대해 적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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