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비 - 고래 안의 방 듣기/리뷰
키비가 돌아왔다. 조용히 군복무를 마치고 신곡을 공개했다. 제목은 고래 안의 방. (고래안의 방이라고 많이 나오는데 띄어쓰기 좀 되었으면..) 제목부터 키비 냄새가 물씬 난다. 일단 들어보자.
고래 안의 방은 키비의 4집 수록 예정곡이다. 키비는 현재 스탠다트뮤직에 속해 있는데, 앞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고래 안의 방의 포인트 중 하나는 키비가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고 프로듀싱 했다는 것. 오래된 랩퍼들은 자연스럽게 프로듀싱도 함께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참고로 키비는 이번 곡을 공개하면서 공식사이트를 오픈했다. 평소 키비에게 관심 있던 분들이라면 한 번 들러보도록 하자. 키비의 활동 전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주소는 http://kebeesoul.com 이다.
고래 안의 방에 대해 먼저 얘기해보자. 다음은 가사.
잠이 들었다가 깨면 창문을 열어 밖이 보이네
시커멓게 짠물을 토해내고 있는 바다 위에 떠있는 어린애
알람을 끈 손위에 심장보다 느린 음악 들려있네
아침의 경치, 뒤섞인 음악소리, 방의 밀도 더욱 짙어지네
이 방은 항상 행성 위에 떠 있어
날 밀고 가는 바람 위에 기대고 있어
조촐한 안식처, 마음이 가난한 시절
흔들린 얼굴 내려보다 발견해 입에 걸린 낚싯줄
어제 하루 모든 삶을 안도해도
오늘은 떨어지는 칼날보다 난폭해 더
매일 꿈 설레인들
얽매일 뿐 손내민들
나를 끌어내지 말라 밀어댔지만
"계속 이렇게만 지내다 보면 모두다 나를 잃어버리니까"
물론 그렇겠지만 위로되진 않아 기웃대지마
내 두 발로 찾은 어두운 방
한 점의 빛없이 바닥 위에 누울까
잠시만 울타리 쳐 자 창문 열어 달 떴네
고래고래고래 안에 힘껏 헤엄쳐 (힘껏 헤엄쳐)
그래그래그래 있는 힘껏 밀어줘 (있는 힘껏 밀어줘)
고래고래고래 소리 힘껏 질러줘 (소리 힘껏 질러줘)
내 입에 걸린 건 낚싯줄, 끌어당기질 않아
날 비추는 저 달빛은 아마 작은 방안에 남겨진 유일한 출구
바닷물을 완전히 뒤집어쓰고 몸뚱이 젖기까지
잠이 확 깬 나 노를 찾아 허둥지둥 젓기까지
흘러간 많은 시간 동안 난 저기 저 환한 북극성 하나만
찾자 얘기했어 (굉음의 러닝머신 그 위에서)
희망은 탄-약, 너무나 오래 달궈서 타버린 열정이
반대로 만약 내 몸을 꿰뚫어 갔다면
이곳은 고래 뱃속이 아니라 난 이미 낙원의 백성
한없이 멀어진 목적지 또 놓쳤지만 유턴자리를 못 찾지
섬세한 영혼, 원대한 경험
첨예한 변론, 거대한 변명
저녁노을 꺼질 때 쯤, 낚싯줄 당기는 신호에
무릎 꿇어 기도해 당신이 필요해
반절만 인간인 나라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이 미로에서
물살은 거세 나라는 덫에
빠져버린 내가 조용히 온몸을 들어
나를 구원하는 길에 간절히
고래고래고래 안에 힘껏 헤엄쳐 (힘껏 헤엄쳐)
그래그래그래 있는 힘껏 밀어줘 (있는 힘껏 밀어줘)
고래고래고래 소리 힘껏 질러줘 (소리 힘껏 질러줘)
내 입에 걸린 건 낚싯줄, 끌어당기질 않아
날 비추는 저 달빛은 아마 작은 방안에 남겨진 유일한 출구
깊이 숨어 있기엔 숨이 짧아
들이마시며 빌린 것이 많아
내 몫 다 갚지 못해
내 호흡은 닻이 못돼
깊이 숨어있기엔 숨이 짧아
들이마시며 빌린 것이 많아
내 호흡은 닿지 못해
내 호흡은 닻이 못돼
바닷물을 생각나게 하는 비트 위에 중저음의 랩핑이 깔린다. 여기서 방은 바다가 되고 나는 고래가 된다. 그런데 이 비유는 마지막에 가서 한번 더 틀어진다. 나는 고래가 아니라 고래 안에 갇힌 사람이다. 고래 안에 갇힌 사람. 이 비유는 분명 성경에 나오는 요나 얘기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문제는 이 고래 뱃속이 '내 두 발로 찾은 어두운 방'이라는 것이다. 키비는 왜 자신의 두 발로 어두운 방을 찾았을까. 스스로 어두운 방을 찾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어두운 방 속에 들어가 키비는 기도한다. 반절만 인간인 나라도 빠져나갈 수 있을까, 라고 중얼거리며.
이렇게 스스로 갇힌 키비를 사람들은 끌어내려 한다. 고래의 입에 낚싯줄을 걸고. 그러나 키비는 이를 거부한다. 그는 스스로 갇힌 미로 속에서 구원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그 기도는 언제까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래가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듯, 깊이 숨어 있기엔 숨이 짧다. 아직 저 밖에는 빌리고 갚지 못한 것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기도는, 즉 내 호흡은 구원에 닿지 못하고, 또 나를 자신의 내면 속으로 파고들게 하는 닻이 되지 못한다.
이 곡에는 구원에 대한 열망과 빌린 것을 갚아야 한다는 마음, 갇히고 싶다는 마음과 빠져나가야 한다는 간절함이 충돌하고 있다. 키비는 그런 충돌을 바다와 고래라는 비유를 들어 표현해냈다. 분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좋은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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