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언 - 자랑 듣기/리뷰
2000년대에 홍대와 인디밴드라는 단어에 관심 있던 사람 중 MOT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아름다운 불협화음과 그들만의 언어가 담긴 음악으로 이름을 알렸던 밴드 MOT. 날개, close,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서울은 흐림 등 굉장히 매력적인 곡들을 발표했었다. 멤버 중 하나인 이이언은 요즘 솔로로 활동하고 있는데, 오늘은 그중 '자랑'을 들어보려고 한다.
자랑은 원래 M.O.T의 1집 비선형(Non-linear)에 수록된 곡이다. 그게 이이언의 미니 앨범 Realize에 수록되어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른다. 찾아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이번에는 그냥, 이이언이 부르는 자랑을 들어보자. 다음은 자랑의 가사.
무슨 꿈이었는지 늦잠을 잤어요
서둘러 준비를 하고 뛰는 길엔 조금 숨이 찼죠
하루는 하루 종일 길다가 막상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워 생각하면 왜 그리 짧은지 이상하죠
그저 시간에 기대면 될까요
모든게 다 흐려지나요
잊고 또 잊혀지는 건가요
자꾸 날짜를 잊어요 맑은 날이 좋구요
우습지 않아도 더 웃어요 전보다 더
이젠 그래요
여전히 어려워하는 날 본다면
그대 또 바보라 하겠죠
얼마나 더 보내야 할까요
오늘은 그대 생각 하지 않았어요
나 그걸 자랑 하려구요
제목이 자랑이다. 뭘 자랑한다는 걸까. 나는 그대와 헤어졌다. 그리고 조금씩 그 상태에 익숙해져 간다.(혹은 그런 것처럼 보인다) 가끔 내용이 생각 안 나는 꿈을 꾸고, 시간이 이상하게 짧다고 느낀다. 날짜를 잊고 웃기지 않아도 웃는 일이 많아진다. 맑은 날이 좋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을 보내면 잊을 수 있는 걸까, 나는 중얼거린다.
그러나 여전히 그건 어려운 일이다. 그대를 보면 나는 또 그대를 어려워할 것이다. 그건 나에게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다.
오늘은 모처럼 그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걸 자랑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대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 그것을 그대에게 자랑하려는 생각 또한 그대에 생각이다. 그러므로 나는 슬프고,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꿈을 꾼다.
이이언의 이 노래를 들으니 생각나는 M.O.T의 노래가 몇 곡 있다. 다음은 한희정의 피쳐링이 인상적이었던 '서울은 흐림'
가사는 단조롭다.
서울은 흐림
시간은 느림
추억은 그림
그대는 흐림
서울은 흐림
생각은 느림
널 그린 그림
기억은 흐림
* 아무 말도 아무 일도 아무 예감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하루는 가고
아무 말도 아무 일도 아무 예감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나도
이이언과 한희정이 조용하게 몇몇 단어들을 음악 위에 나열한다. 단어들은 각운이 맞다. 그래서 더 인상적인 단어들이 흐린 기억 속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루는 가지만, 그리고 나도 아무렇지 않다고 말해보지만, '그러나' 아무렇지 않지 않다.
이이언의 솔로 음악들은 M.O.T 때보다 더 난해한 사운드를 보여준다. 그를 소개하는 네이버 온스테이지의 머릿말은 전자음악의 장인이다. 그의 작업 노트를 봐도 그 말은 썩 잘 어울린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난해하고, 동시에 서정적인 사운드를 보여줄까. 기대되는 아티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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