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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4 : 음악

김경주 - 드라이아이스

by KUWRITER 2013. 10. 20.

드라이아이스

-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문득 어머니의 필체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고향과 나 사이의 시간이

위독함을 12월의 창문으로부터 느낀다

낭만은 그런 것이다

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


골목 끝 슈퍼마켓 냉장고에 고개를 넣고

냉동식품을 뒤적뒤적거리다가 문득

만져버린 드라이아이스 한 조각,

결빙의 시간들이 피부에 타 붙는다

저렇게 차게 살다가 뜨거운 먼지로 사라지는

삶이라는 것이 끝내 부정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손끝에 닿는 그 짧은 순간에

내 적막한 열망보다 순도 높은 저 시간이

내 몸에 뿌리내렸던 시간들을 살아버렸기 때문일까

온몸의 열을 다 빼앗긴 것처럼 진저리친다

내안의 야경을 다 보여줘버린 듯

수은의 눈빛으로 골목에서 나는 잠시 빛난다

나는 내가 살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순교할 것이다

달 사이로 진흙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

천천히 오늘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 공기들이

동상을 입은 채 집집마다 흘러가고 있다

귀신처럼.


*고대시인 침연의 시 중 한 구절





오늘은 좋아하는 시 한 편. 시를 음악이라 할 수 있을까.

내가 채집했던 단어들은 어디로 갔나, 몸속에 녹았나, 아니면 흘러갔나. 

채집을 그만둔지 오래다.

결들을 나누고 나눠서 더 깊이,


김경주의 드라이아이스. 김경주의 시 중 가장 좋아하는 시다. 인용의 인상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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